- [성경본문] 마태복음24:32-4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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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5년 12월 14일 주일낮설교요약문
제목: 인자를 앙망하는 성도
본문: 마 24:32-44.
1. 서론: 재림, 우리 신앙의 뜨거운 원동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덧 한 해를 결산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12월의 중순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리는 대림절 기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 시기 우리가 반드시 점검해야 할 신앙의 본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생 전체를 결산하게 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네로 황제의 잔인한 박해와 사자의 위협 속에서도 그들이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예수 다시 오신다!"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재림은 막연한 이론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을 이기게 하는 힘의 원천이자 가장 뜨거운 소망이었습니다.
성경은 주님과 우리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비유합니다. 신부에게 신랑이 다시 오는 날은 가슴 설레는 기쁨의 날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안에 이 '재림의 사모함'이 살아있는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2. 현대 교회의 왜곡된 시각: 두려움과 무관심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재림'은 두 가지 왜곡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막연한 두려움입니다. 과거 특정 날짜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주장했던 이단들의 사기 행각으로 인해, 재림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신랑을 기다려야 할 신부가 신랑의 귀국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면 그것이 정상입니까? 이는 마치 중동에 돈 벌러 간 남편이 보내준 돈을 엉뚱한 곳에 탕진한 아내가 남편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겁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정절을 지키지 못했기에 두려운 것은 아닙니까?
둘째는 세속적인 무관심입니다. "2천 년 동안 안 오셨는데 설마 지금 오시겠어?"라는 생각으로 일상의 재미에만 매몰된 모습입니다. 이는 홍수 심판 직전까지 시집가고 장가가며 먹고 마시는 일에만 빠져 있다가 멸망한 노아 시대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3. 종말의 징조와 말씀의 확실성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징조들을 주셨습니다. 기근과 전쟁의 소문은 재난의 시작일 뿐입니다. 진정한 끝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된 후'에 올 것입니다. 또한 '멸망의 가증한 것', 즉 적그리스도가 거룩한 곳에 서서 성도를 핍박하는 환란의 때가 올 것이라 경고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듯이, 이러한 징조들을 볼 때 인자가 문 앞에 이른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주님의 재림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4. 재림의 시기와 분별: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날짜'에 대한 헛된 호기심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특정 날짜를 지정하며 사람들을 현혹하고 재산을 갈취하는 자들은 모두 '도둑놈'이요 '사기꾼'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번개가 동에서 서까지 비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갑작스럽게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기에 집착하지 말고,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5. 깨어 준비하는 삶: 노아와 도둑의 비유
주님의 오심은 준비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명확히 가르는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밭에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합니다. 맷돌을 갈다가도 운명이 갈립니다. 이는 재림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예고 없이 닥칠 것임을 보여줍니다.
도둑이 언제 올지 모르는 집주인이 밤새 깨어 집을 지키듯, 성도는 영적으로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마" 하는 안일함이 영혼을 망칩니다. 노아처럼 세상의 조롱 속에서도 묵묵히 방주를 예비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6. 성도의 마땅한 자세: 신부의 정절과 사명
그렇다면 우리가 '깨어 준비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믿음의 정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 유혹과 가짜 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는 신랑과 신부의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둘째,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끝이 온다고 하셨으니,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일에 힘쓰는 것이 주님을 마중 나가는 길입니다.
셋째, 선한 청지기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 재물, 달란트를 나만을 위해 쓰지 않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데 드리며 사는 것입니다.
넷째, 소망으로 인내하는 것입니다. 재림의 날은 심판의 날이 아니라,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수고를 보상해 주시는 영광의 날입니다. 이 소망이 있다면 어떤 핍박도 견딜 수 있습니다.
7. 결론: 기쁨으로 신랑을 맞이합시다
성도 여러분, 주님이 처음 오셨을 때 사람들은 무관심했고 주님은 차가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때 그런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재림은 두려운 심판이 아니라, 우리 소망의 완성입니다. 세상 재미에 빠져 주님을 잊고 사는 삶이 아니라, 오늘도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를 고백하며 신랑을 맞이할 준비가 된 거룩한 신부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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