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태복음9:9-1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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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5년 9월 21일 주일낮설교요약문
제목: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본문: 마 9:9~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진정한 관계의 소중함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바쁘고 고달픈 삶 속에서 깊은 만남과 사랑이 사라지고 있는 이때,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우리가 하나님의 한 식구임을 확인하고 서로 연합하는 소중한 공동체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주님 나라의 진정한 식구로서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그 답을 예수님의 행동을 통해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세리 마태를 부르신 예수님의 시선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라는 사람을 보셨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동족 유대인들에게 인정사정없이 세금을 거둬들이며 부를 축적했기에, 사람들에게 매국노이자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외면당하고 상종 못 할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모두가 죄인이라 손가락질하던 마태에게 다가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 세리를, 주님께서는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 부르심에 마태는 즉시 일어나 따랐습니다. 이는 안정되고 부유한 세리직을 포기하는 큰 희생이었습니다. 마태는 이 부르심을 너무나 영광스럽게 여겼고, 구원의 기쁨에 감격하여 자신의 집에서 예수님을 위한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마태가 이 잔치에 자기와 같은 세리들, 그리고 죄인들을 초청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자신을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제자로 삼아 주신 예수님을,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인이라 하여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그들과 함께 어울려 주셨습니다. 이 모습은 그 당시 죄인들에게 참된 소망과 기쁨이 되었습니다.
2. 바리새인들의 비난과 예수님의 대답
그러나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바리새인들의 시선은 예수님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의인이라 여겼기에, 죄인들을 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감히 예수님께 직접 말하지 못하고, 제자들에게 다가가 비난하며 따져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이 말 속에는 정죄와 멸시가 담겨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이 비유에서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의롭고 완전하다고 여기는 '건강한 자'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함과 공로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여겼습니다. 반면에 세리와 죄인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병든 자'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절감했기에, 의사이신 예수님을 간절히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인애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성경을 잘 알고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들의 오만함을 지적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주님은 형식적인 제사보다 그 본질인 인애(仁愛), 곧 변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원하셨습니다. 성경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형식과 조문만 지켰을 뿐,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의롭다고 여기는 교만에 빠져, 정작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4.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과 우리의 사명
주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셨습니다. 이 주님의 말씀은 먼저 구원받은 우리에게 주님이 주신 사명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먼저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인애(긍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듯이, 우리도 이 구원의 기쁨과 사랑을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여 고통받고 절망하는 이웃에게 전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마태가 잔치를 열어 동료 세리와 죄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했듯이, 우리 역시 "죄인을 부르러 오신 하나님의 사랑, 진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삶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는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바리새인들처럼 주님께 나아오려는 사람들의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먼저 마태처럼 구속의 은총을 깨달아 행복하기를 원하시며, 그 기쁨과 감격 속에서 이 사랑을 전하고 알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죄인인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친히 오셨고, 우리 대신 죄값을 치르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죄인을 불러 구원해 주시는 주님께 나아와 믿음으로 구원받은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쁨과 감격으로 죄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이 주님을 만나 새 삶을 살아가도록 힘써 증거하는 주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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